1982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선보인 영화 <E.T. The Extra-Terrestrial>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이자, 20세기 영화사의 전환점으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그 중심에는 단순히 외계 생명체라는 설정을 넘어, 감정을 지닌 생명체로써 인간과 교감하는 E.T.라는 캐릭터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E.T.라는 캐릭터가 어떤 철학적, 시각적 요소로 구성되었는지를 디자인, 상징, 스토리라는 세 가지 주제로 분석하겠습니다.
영화 'E.T.' 독창적인 디자인
E.T.의 외형은 단순히 비주얼적인 흥미를 유도하는 차원을 넘어, 정교한 감정 전달 매개체로 설계되었습니다. 스필버그 감독은 관객이 ‘다른 존재’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위협적이고 기괴한 모습이 아닌, 친근하면서도 독특한 외형을 선택했으며, 이는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을 가능하게 만든 핵심 요인이었습니다. E.T. 의 눈은 감정 전달의 중심이 됩니다. 실제로 제작진은 인간 아기의 눈, 개와 고양이의 눈에서 영감을 받아 커다랗고 촉촉한 눈망울을 구현했습니다. 이 눈은 말보다 먼저 감정을 전달하며, 공포, 외로움, 호기심, 기쁨 등을 묘사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피부 질감은 코끼리와 도마뱀, 노인의 주름진 얼굴 등을 혼합해 제작되었는데, 이는 E.T.가 연약하면서도 오래된 지혜를 지닌 존재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또한, 목이 길게 늘어나는 설정이나 붉게 빛나는 손가락, 가슴에서 빛이 나는 구조 등은 단순한 시각적 특수효과를 넘어 캐릭터의 정체성을 상징화한 요소입니다. 목이 늘어나는 장면은 호기심을 표현하며, 손가락의 빛은 소통과 치유, 가슴의 빛은 감정의 연결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단순한 외계 생물의 설정을 넘어서, 캐릭터 자체가 하나의 ‘언어’가 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E.T.의 디자인은 철저히 정서적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계산된 구조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단지 영화의 미장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중심축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스필버그는 “E.T.는 모두의 친구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는데, 그 바람은 캐릭터 디자인의 성공적인 구현 덕분에 현실이 되었습니다.
상징 - 우정과 이해의 매개체
E.T.는 영화 내내 단순한 외계 생명체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는 '다름'을 대표하면서도, 그 다름을 통해 '같음'을 발견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타자 사이의 감정적 간극을 메우는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주인공 엘리엇과의 관계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감정선이며, 이들의 우정은 나이, 종, 언어의 장벽을 초월한 진정한 이해의 형태를 보여줍니다. 엘리엇은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아이입니다. 그는 외계인인 E.T.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도 몰랐던 감정의 깊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이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게 되는 설정—예를 들어 E.T.가 술을 마시자 엘리엇도 취하게 되는 장면—은 타자와의 정서적 연결이 물리적 장벽을 넘을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설정은 E.T.가 단순한 SF적 상상물이 아닌, 인간 감정의 또 다른 얼굴로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또한, 영화의 상징적인 대사 “I’ll be right here”는 단순한 작별 인사 그 이상입니다. 이 대사는 거리와 시간을 넘어서는 연결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별 이후에도 서로의 마음속에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상징합니다. 이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겪은 모든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E.T.는 자연과의 연결성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가 죽음에서 되살아나는 장면에서 꽃이 다시 피는 묘사는 생명과 자연, 치유의 순환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장면입니다. 또한 정부 요원들이 E.T.를 과학적 실험 대상으로만 보는 것과 달리, 아이들은 그를 ‘생명’으로 대한다는 점도 상징의 대조를 이룹니다. 이는 인간이 기술과 권력으로 타자를 대상화할 때의 문제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스토리 - 외계인이 아닌 감정의 주인공
E.T.의 이야기 구조는 전통적인 SF영화의 공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외계인이 지구에 불시착하고, 인간들과 마찰을 겪는 일반적인 전개 대신, <E.T.>는 외계인이 인간과 깊은 우정을 나누고, 서로의 성장을 도우며 이별하는 감정 중심의 서사로 구성됩니다. 이는 기존의 외계인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며, 바로 그 점이 <E.T.>를 독보적인 작품으로 만들어준 이유입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 구조는 사실상 ‘성장영화’에 가깝습니다. 엘리엇은 E.T.를 만나면서 가족의 결핍을 채우고, 타인과의 감정 교류를 배우며 점점 어른으로 성장해 갑니다. 처음에는 거부감과 호기심을 느끼던 그가, E.T.를 숨기고 지키며, 결국 그의 귀환을 돕기까지의 여정은 한 소년의 내적 성숙을 담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관객들로 하여금 엘리엇에게 몰입하게 만들고, 자연스럽게 E.T.와의 이별에 감정적으로 공감하도록 만듭니다. 또한,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는 정부 요원들과의 대치, 죽음과 부활, 마지막 비행 장면 등 긴장과 감동이 교차하는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 자전거로 하늘을 나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영화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특수효과가 아니라, 상상력과 자유, 유년기의 해방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작용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엘리엇은 “Stay...”라고 말하고, E.T.는 “I’ll be right here”라고 대답합니다. 이 짧은 대화는 영화 전반의 주제를 요약하는 핵심 대목으로, 존재는 멀어져도 연결은 계속된다는 믿음을 전달합니다. 이는 이후 많은 가족 영화나 성장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차용되는 감정 구조의 원형이 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E.T.는 스토리의 배경 요소가 아닌, 감정의 주체로서 작동합니다. 그는 사랑받고 싶고, 돌아가야 하며,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으며, 이러한 내러티브 구성은 캐릭터의 상징성과 디자인을 극대화하여 관객의 몰입을 유도합니다. E.T.는 단순한 외계인이 아닙니다. 그는 상상력과 감성, 타자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상징으로 지금도 수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디자인적으로는 공감을 유도하고, 상징적으로는 치유와 연결을 제시하며, 스토리 속에서는 감정의 중심축으로 기능하는 이 캐릭터는 영화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캐릭터 구축 사례 중 하나입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E.T.>가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외로움 속에서 연결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E.T.는 조용히 말합니다. “I’ll be right here.”